어쩌다 샀는진 기억에 안나지만 언젠가부터 집에 있던 책 '자살가게'를 읽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집에 있었으니 아마도 오컬트랑 판타지를 좋아하던 중학생 쯤에 산 것 같다.
시간이 조금 남아 가볍게 읽을 요량으로 꺼내들었는데 킬링타임으로 좋을 정도의 가벼움에 편하게 몰입해서 읽었다.
이 책은 제목부터 그로테스크하다.
'자살가게'
자살이 가볍게 논의되고 수행되는 암울한 세계관에서 자살용품을 파는 가게.
그 가게에 태어난 대책없이 발랄한 어린 아이에서 비롯되는 이야기다.
자살용품을 파는 이 가게는 몇 대째 내려오는 자살자 집안의 가게이다.
부모는 자녀들을 가스라이팅하며 우울한 미치광이로 키우고자 하지만
주인공 알랑은 즐거운 노래를 듣거나 희망적인 이야기를 하며 그들을 사사건건 방해한다.
그리고 어린아이는 자신의 짧은 평생에 걸쳐 마침내 그들을 바꾸는데 성공한다.
스스로를 쓸모없다고 생각하는 누나와 붕대를 풀면 머리가 터져 죽을거라고 생각하는 거식증 형, 자살가게를 운영하는 부모님까지 마침내 행복한 얼굴로 만들고서 발랄하고 해맑은 어린이는 스스로 목숨을 놓아버린다.
마지막에 반전이 있으리라는 것은 "열 개의 빈틈없는 손들이 합심해서 한 번 죽은 거나 마찬가지인 아들을 가족의 품안으로 되돌아오게 하고 있는 셈이다."라는 문장에서 눈치를 채버렸다.
내가 읽어온 많은 책들이 희망을 소설이 끝나기 두세장 전부터 주지는 않았으니까.
이 책을 덮으며 가스라이팅과 우울 전시의 폭력성에 대해 생각했다.
온가족이 미쳐버린, 미쳐버린게 정상인 집안에서 나고 자란 '발랄한' 아이는 과연 건강한 아이일까?
가족 모두의 행복에 자신 생애에 임무가 완수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 아이는?
옮긴이의 글에서는 이 책을 읽고 철학적 고민을 할 필요는 없노라고, 잘 만들어진 컬트무비 보듯 즐기라고 말한다.
물론 해맑은 말괄량이 스펀지밥에 의해 대차게 망하는 징징이들을 보는 듯한 우스움이 있다.
(나는 지금은 징징이 편이다. 징징이를 제발 내버려둬...)
하지만 우울증에 시달려봤고 우울증을 폭력적으로 전시하는 사람도 봐온 입장에서는 조금쯤 무거운 감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적어도 어린아이에게 그런 어둠이 스미게 하는 어른은 되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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